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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간이역312

빨래를 하며 겨우내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이불을 빨았다 큰 함지박에 넣어 발로 빨았던 번거로움을 용량이 큰 세탁기로 바꾸니 힘 한 푼어치 안들이고 수월하게 세탁을 하면서 이 세상 발명품 중 주부들에게 크나큰 공헌을 한 알 수 없는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모처럼 미세먼지도 없는 날 일찌감치 온 더위로 볕조차 이글거리니 적당히 불어대는 바람결 타고 너울대며 뽀송뽀송 잘 마르겠다 단독에 사는 장점 중 하나 옥상이 있어 빨래 널기는 그만이다 건조기가 있다고는 하나 자연바람과 햇볕을 따라잡기는 어림도 없다 빨래를 널고 자판을 톡톡~ 적당이 부는 바람을 느끼며 갈색 향기를 야금야금 음미하는, 주어진 달콤한 일상이 잔잔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2023. 5. 20.
학림다방 학림다방 세월의 무게가 잔뜩 묻어있는 입구에 서면 학림의 역사가 동판으로 새겨져있다 1956년 서울 대학로 119번지에 문을 연 이래 숱한 지식인과 예술인의 안식처가 됐던 학림다방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아날로그 감성을 송두리째 간직한 LP판이 빼곡하니 자리하고 테이블도 의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카페란 이름만이 존재하고 있는 지금 요즘 세대들에겐 다방이란 생소한 단어를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을 마로니에와 함께, 스쳐간 많은 예술인들과 함께 했던 그 옛날을 회상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내 나이 5 살 때 생겼다는 다방 커피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그 시절 주머니 사정이 너나없이 곤궁했던 시대 문인들이, 이름 없는 가수 김 광석이 머물렀던, 아직도 60 년대에 멈.. 2023. 5. 2.
추억이 새롭다 야생화가 피는 봄이면 통과의례처럼 들리던 세정사 계곡 진사들 이르길 그곳은 천상의화원 이라고 한다 3월부터 5월 까지 복수초를 시작으로 온갖 야생화들이 줄지어 피어나기 때문이다 편하게 차를 타고 갈 적도 있었지만 두 발 자가용으로 집을 나서 운길산 역에서 왕복 두 시간을 걸어 온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던 건 그 만큼 열정이 넘쳐 났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가슴으로만 그 날의 환희를 느낄 뿐 선뜻 길을 나서기도 쉽지만은 않다 봄이면 눈앞에 아른대는 숲속 요정들의 모습에 가슴앓이를 한 통 치루며 내년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이 봄 추억의 뒤안길을 서성여 본다. Nana Mouskouri - A Place In My Heart(내 마음속에 있는 장소) 2023. 4. 21.
외로운 등판에서..삶을 보다 외로운 등판에서..삶을 보다//유승희 남해 동파랑 마을의 동백 할머니 돌아누운 등판이 왠지 섧다 아랫녘의 한여름은 불볕더위일 게다 미동도차 없는 머리칼을 보니 그 흔한 선풍기조차 없나 보다 누군가가 두고 간 듯한 까만 봉지 벽에 기대선 지팡이가 나일론 빗자루가 싱크대의 비틀린 문짝이, 가만 들여다보노라니 가슴이 먹먹해 오며 동백기름 자르르 발라 단정하니 쪽 머리 하셨던 까무룩 잊었던 외할머니가 울컥울컥 그립다 매 년 오르는 건강보험료 이번엔 노인요양복지를 위해 올렸다 하니 투덜투덜 짜증 내지 말아야겠다 너나없이 한 살매 살아내며 윤기 자르르 흐르던 새카만 머리 흰서리 내리고 탱글탱글 곱디곱던 얼굴 사방천지 밭고랑 물꼬 트며 하, 세월에 늙어 늙어 한여름 땡볕 더위 구부정히 드러누운 등판에 외로움 절절 설.. 202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