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간이역
즐거웠던 날은 가고
by 비 사랑
2007. 3. 5.
즐거웠던 날은 가고//유승희
아주 오래 전
나를 찾던 우체부 아저씨
제복에 무거운 가방을 둘러매고
한 여름 땡볕에 땀방울 뚝, 뚝
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겨울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손을 호호 불며 찾아오시고는 했습니다
전방으로, 월남으로 떠난
아들의 무사함을 알리는
한 통의 편지에 웃음을 가득 전해주고...
애인 소식 기다리는 순이의 분홍빛 연서가...
펜팔을 주고받는 어설픈 풋사랑의 수줍음이...
방학이면 선생님의 편지를 받아들고 뛸 듯이 기뻐하는 동심이...
언제부터인가
우체부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오시면서
전방에서 월남에서 오던 편지도...
편지를 주고받던 연서도 음성을 듣고 들려주며...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순수의 마음도...
가방의 무게 또 한 가벼워져만 갔습니다
이제는 가끔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은행 문을 넘나들게 하는 고지서만이
텅 빈 집을 찾아들고
담장아래 늘어진 능소화 만이
쓸쓸한 내 마음 아는 듯
벗해줄 뿐.
사진//하늬바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