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문밖에 친구가 다가와 말 했다 교문 앞에 너의 아버지 계셔..라고 반가움은커녕 조막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환경 미화 심사 때마다 팔손이, 고무나무 등 교실 한편을 멋지게 장식할 화분을 가져다주시던 아버지를 아이들은 기억한다 여자 문제로 사람들의 입질에 오르내리던 아버지는 은행에 사표를 내던지고 행방을 감추셨고 쫄딱 망한 우리는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근처 신흥사란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평생을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만 살아 온 엄마는 악에 바쳐 아버지에 대한 원성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장면을 사주시며 집이 어디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시치미 딱 띠며 모른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장면 한 그릇 사탕발림에 넘어간 꼴이 된 나는 엄마한테 디지게 혼이 나고 반갑잖은 아버지의 등장에 반가워하는 사람 하나 없는 냉한 집안 공기는 모두의 숨통을 죄여오는 것만 같았다 딱히 갈 곳도 없는 아버지는 외출을 하셨다 늦은 밤 귀가하시며 문밖에서 우리들 이름을 부르셨지만 문 열어주지 말라는 서슬 퍼런 엄마의 으름장에 우리 모두는 귀를 틀어막았지만 사람이 할 짓이 아닌지라 결국은 문을 열어 드렸던 그 겨울 차디찬 문밖에서 아버지는 한동안 서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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