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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사모곡

울 엄마

by 비 사랑 2010. 4. 23.

 

우리 모두가 거의가
배 골았던 시절
그녀는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서울 가회동에 한옥 한 채를 장만하여
밥해줄 사람을 딸려 서울로 유학을 오셨다
서울에서 교 동 초등학교, 성신 여학교를 졸업하신 뒤
중앙보육전문대학을(중앙대학의 전신) 졸업하시고
학교 교사로 재직 중 같은 학교에 계신 
키 크고 멋있는 미남 동료 교사와 결혼을 하셨다.
그 결혼이 그녀의 인생에서 오점이요, 
불행의 시작 이었다.
생활이 궁핍한 큰집의 모든 것을 그녀의 몫으로 떠안으며
자연 부부 갈등 
또한 부수적으로 따라야만 했다.
마작에까지 손을 대시는 시아주버니
빚보증을 서는 남편
친정으로부터 받은 재산인 토지에서 나오는 쌀섬들을 
종일토록 우마차에 실어 내다 팔아 빚을 청산하다 보면
그 또 한 며칠 뿐
꼬맹이의 어릴 적 기억에 의하면 
집안 살림 모든 것에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적도 있었다.
있으면서 베푼다는 건 어찌 보면 받는 쪽 보다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베품을 받는 상대가 진정으로 살아보려 노력을 해도
그 어떠한 성과가 없을 때
정말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것 이였다면,
형제간의 우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 이였다면,
그렇게 그녀가 마음 아파하며 
속상해하시지는 않으셨을 같다
성장하면서
유(柳)가들에 대한 그녀의 적개심은
큰 집 문제만이 아닌 이런 저런 이유로 
미움과 증오심 까지 발전돼 입에 거품 물며
화를 내시며 유가 종자라면 이가 갈린다, 라고 까지 하시곤 했다.
40대 중반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그녀의 시집식구들에 대한 베품도 
아니 정확한 말로 표현하자면 뜯기는 일도 
막을 내렸다
늘
하시던 말씀
"죽어도 나는 니 애비 곁으로는 안 갈꺼니까 화장해서 뿌려다오"라고
유언을 하셨지만 큰아들은 차마 그리 할 수 없어
납골당에 모셨다
영혼의 세계로 가신 그녀
죽음은 또 다른 생의 연장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아마 
살아있는 우리의 세상이 있듯이 
죽은 이들의 세상 또 한 있으리라 믿는다.
이젠 가족 납골묘에 나란히 계신 두 분
어쩌면, 아니
엄마가 아버지를 용서하셨으리라 믿고 싶다.
세월의 더깽이가 오롯이 담겨 있는
빛바랜 누우런 사진 한 장 
그녀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성신 여학교에 다닐 때 모습을 
배꽃나무에 놓고 찍어 본 
울 엄마
엄마...!
이 세상 불리 우는 언어 중 
젤 포근하고 아늑한 말
엄마...!  
이젠 두 번 다시 마주보며 불러 볼 수 도 없는 
그리울라치면 보고플라치면
그냥 허공에 대고 가만가만 불러 보고야 말 
엄마...!
봄바람이 사늘쩍한 이 밤
참 많이 보고 싶다.
눈물나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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