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중의 어원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절(俗節)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요,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나로서 이날에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 데에서 비롯되었다. 2. 백중의 유래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 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중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하면《형초세시기(荊楚歲時 記)》에 이르기를 중원일(中元日)은 승니,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또 상고하면《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木蓮比丘)가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十方大德)에 공양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중일이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날이 오면 항상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베풀었다. 오늘날 불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중의 유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우란분회를 열어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 조선시대 때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승려들만의 불교의식이 되고 말았다. 또 조선 후기에 간행된《송남잡식(松南雜識)》의 기록에 의하면 우란분회 때 승려들이 발을 닦아 발뒤꿈치가 하얗게 되어 백종(白踵)이라 한다는 설도 있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편 제주도에는 백중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성기의《남국의 민속》(下)에 소개되고 있는 이 설화에 의하면 백중은 농신(農神)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도의 목동이 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는데, 이로 인해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후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인 음력 7월 14일을 백중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 이렇게 볼 때 백중은 본시 우리 나라 고대의 농신제일(農神祭日)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의 영향을 받아 그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