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uddhodāna:淨飯王)와 마야(Māyā:摩耶)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키야족은 그 왕호가 정반왕, 그리고 정반왕의 동생이 백반(白飯)·감로반(甘露飯) 등으로 불리고 있는 점에서 미작(米作) 농경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모니는 크샤트리야 계급 출신이라고 하지만, 샤키야족 내부에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가 순수한 아리아인(人)이라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네팔계(系)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아리아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마야 부인은 출산이 가까워짐에 따라 당시의 습속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를 낳았다. 이는 아소카왕[阿育王]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 곳에 세운 석주(石柱)가, 1896년에 발견·해독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에서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찾아와 왕자의 상호(相好)를 보고, "집에 있어 왕위를 계승하면 전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불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하여는 이설(異說)이 많으나, 그 중 유력한 것은 스리랑카의 《도사(島史) Dīpavasa》, 《대사(大史) Mahāva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W.가이거가 주장한 BC 563∼BC 483년 설이다. 이 설은 중국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에 전하는 중성점기(衆聖點記), 즉 불멸(不滅) 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치기 시작하여 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7년(AD 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BC 485년이라는 설(BC 565∼BC 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외에 BC 624∼BC 544년설, BC 463∼BC 383년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전자를 채용하고 있다.
사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