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평]박상주 논설위원
독실한 크리스천을 대통령으로 둔 이 나라에서 왜 용산참사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 왜 전직 대통령과 목사, 택배기사 등의 자결이 이어지는 걸까? 왜 기독교 장로 대통령의 통치 아래 공권력은 점점 폭압적으로 변하는 걸까? 왜 이 땅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등은 줄줄이 대통령의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고 나서는 걸까? 왜 가톨릭과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에서는 화해와 상생을 요구하는 시국기도회를 잇따라 개최하는 걸까?
좁은 골목길에는 시국미사에 참가하려는 신부, 수녀, 시민들로 빼곡했다. 미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사이 참사 이후 줄곧 유족들의 곁을 지켜온 송경동 시인이 고인들에 대한 추모시를 낭독했다. “(…)134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134일째 우리 모두의 양심이/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당해 있다./134일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차가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134일째 이 사회의 역사가 전진하지 못하고/차가운 냉동고에 얼어붙어 있다./134일째 우리 모두의 분노가/차가운 냉동고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어가고 있다.(…)” 그랬구나. 고인들은 하늘나라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차갑고 어두운 영안실 냉동고 속에서 134일이나 지냈구나. 유족들은 또 저렇게 분노와 슬픔 속에서 가슴을 뜯고 있었구나.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한 우리는 참으로 비정한 사람들이었구나. 저녁 8시를 훌쩍 넘긴 시각, 피켓을 든 신부 160여명이 시국미사 현장으로 들어섰다.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시국토론회를 가진 뒤 도보로 용산참사 현장까지 걸어오는 길이었다. 한 피켓의 구호가 섬뜩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어제는 용산에서의 그들이 내일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릅니다.’ 그렇겠구나.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하면 언제라도 저런 일을 당할 수 있겠구나. 정의를 외치지 못하는 우리의 비겁이 저런 일을 또 되풀이 되게 할 수도 있겠구나. 약자들끼리 서로 보듬지 못하면 강자들의 억눌림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시국미사가 시작됐다. 200여 명의 신부들이 손마다 촛불을 들고 진행하는 엄숙하고 장엄한 골목 미사였다. 미사 중에 ‘한국천주교 사제 1178인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다. 시국선언문의 첫 머리는 구약성경 구절을 인용한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하는 간절하면서도 소박한 메시지다. ‘이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장8절) 신부들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각종 이권과 특혜는 오로지 극소수 특권층에 집중시키면서 경제난국의 책임과 고통은 사회적 약자들의 어깨에만 얹어놓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는 대통령에 대한 질타로 이어진다. 고작 자기들만의 행복을 영영세세 누리자고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와 평화통일로 가는 화해와 상생의 기조를 파탄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그저 미디어 악법으로 여론에 재갈을 물리고, 인터넷과 광장이라는 공론의 장을 봉쇄하면서 국민의 저항을 공포정치로 다스릴 징후가 역력하다고.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이토록 줄기찬 국민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헌법준수 의무를 저버릴 바에야 차라리 그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러나는 게 옳다고까지 했을까. 참으로 궁금한 질문 한 가지. 이명박 장로님의 성경에는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 병자 등 사회적 약자들 편에만 서셨던 예수님의 행적이 나와 있지 않은 걸까? 이명박 장로님은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 지 정녕 모르는 걸까? 혹시 모른다면 정말로 물러나는 게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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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입력 : 2009-06-16 16:18:25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 ||||||||||
출처/미디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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