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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간이역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자격과 능력을 갖춘 대통령인가?

by 비 사랑 2009. 6. 5.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전후하여, 이명박정권의 기만적인 정치공세와 인권탄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시민들의 정당한 집회결사의 자유는 무참히 전경들의 군화발에 짓밟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온갖 정치공세를 일삼는 한나라당과 청와대, 그리고 기독교계 일부의 목사 장로들까지 국민의 애도를 모욕하고, 저들의 기득권수호에 혈안이 되어있다.

사실 부패에 관한한 일부 전ㆍ현 한나라당 패거리들이 저질러온 비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저지른 비리에 비견할 바가 못된다.

이명박정권에게 분노하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씌워진 비리혐의가 전적인 무고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가해진 온갖 혐의는 그것이 백퍼센트 사실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왠만한 국민이면 의도적이고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 가해진 지나친 박해임을 금새 눈치챌 수 있다.

여호와 신에게 수도 서울을 바치겠다고 공언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꽤나 의존했던 김진홍목사는

'자질이나 능력이 없는 지도자는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모독과 궤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는 대다수 국민에 대한 모욕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김진홍 목사의 말투를 인용해서 반박해보면, 애당초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야말로 대통령 자격이 될 수 없는 인물임을 알아봤어야 했다.

서울시장 재직시 서울을 여호와에게 바치겠다고 말한 이후,

선거 때에도 부산의 어느 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부흥집회에 보낸 축하메시지 동영상을 보며 많은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집회는 부산의 국보급사찰인 범어사 등을 특정하며, 수 만명의 개신교신도들이 마약, 매춘과 함께 제발 '전국의 (불교) 사찰이 무너지게 해달라'며 기도하는 자리였다.

의도적이었건 아니건 간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의 처신은 목불인견에 가까왔다.

자신의 당선에 공헌해줬다는 이유로 그는 고려대 동문회행사에 두 번이나 찾아가 감사했고, 한국기독교총연맹 기도회 또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찾아가 감사했다.

그는 개신교도의 대통령으로만 처신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종교와 다른 대학을 나온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종교에 관한 한 두루 초연하게 대처했어야 옳았다.

자고로 한 나라의 지도자는 무당과 점집을 멀리해야 한다.

고려의 공민왕도 신돈이라는 땡중을 국사에 끌어들여 고려조의 멸망을 자초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2세도 황후가 의존하는 땡신부인 라스푸틴의 말만 듣다가 제국의 멸망을 맞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왔을 때도 국가의 원로라며 조00목사를 초청해 식사를 같이했다.

불교계가 대거 반발한 종교편향사태는 그가 뿌린 씨앗으로부터 잉태한 것이다.

아직도 이때 만들어진 종교간의 갈등과 증오는 지금 국가운영의 큰 걸림돌로 내재되어있다.

또 집권초기부터 밀어부친 한반도운하에 대한 구상은 그가 토목업자로서 살아온 패러다임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 인물임을 말해 주고 있다.

경운기 정도의 속력밖에 낼 수 없는 한반도운하를 물류혁명이라고 밀어부친 이면에는

청계천에서 얻은 자신감 때문인지 몰라도 세상동력의 변화가 '환경'과 '문화'

즉 과거에는 쓸모 없었지만 지금은 '쓸모 있는 수요와 생산'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도력이 70년대, 80년대 농경사회,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 꼭 갇혀있음을 알려준 사례가 집권 초기 '얼리버드' 열풍이 아닐 수 없다.

농경사회 산업사회에서는 해 뜨자마자 먼저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먹는다. 그러나 정보사회 이후 우리사회는 거대한 산업구조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이제 정보나 IT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디지털컨버전스, 즉 문화콘텐츠가 결합된 융복합화 산업의 부가가치에 눈을 뜨고 있다.

게임,만화 ,애니, 영화, 음반, 캐릭터 등 새로운 창의와 상상력이 부가된 신상품이 경제의 핵심동력이 되어가고 있고, 환경,

웰빙 산업 등 고부가가치의 신성장 동력이 선진국의 성장동력이 되어가고 있음을 집권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알지도 못했다.

따라서 얼리버드 열풍의 창시자인 그는 새벽부터 농작물, 혹은 공사현장으로 달려 나가는 이장(里長) 혹은 공사 십장(什長) 수준의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였다.

사실 새들의 세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주행성 새만이 생산성을 내는 것이 아니다.

올빼미 소쩍새 두견새 부엉이 등 야행성 새들도 밤에 생산성을 낸다.

열심히 놀면서 창의와 상상력으로 생산성을 내는 문화창조자인 올빼미가 고부가가치를 내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 시퍼렇게 서슬이 퍼렇던 얼리버드들은 어디 갔는가. 얼리버드였는가 얼리버그(early bug)였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 벌레들의 운명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봤다.

촛불사태도 우리는 신중하지 못하고 경박한 지도자로서의 이명박 대통령의 단면을 읽게 해줬다.

당시 농림식품부 책임자들의 반대에도 대통령은 캠프데이비드의 선물만 생각하고 실무책임자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 결과 MBC <PD수첩>의 선동 여부와는 별개로 경박한 결단을 내린 지도자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다.

우리는 <PD수첩>이 잘 만들어진 다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노무현 전대통령과 비교해서 월등히 휼륭한 지도자라고 김진홍 목사가 은연중 대비시킨 그가 정말 대한민국의 지도자 감인가.

그리고 그가 국민의 대통령인가. 단연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한다.

그가 내세운 공약과 집권초기의 정책을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를 더욱 강화하자는 것이다.

4만불 국민성공시대를 내세우고 7% 성장, 4만불 국민소득, 세계 7대강국 진입이라는 공약을 뜯어보면,

국민을 양계장의 닭처럼 잠 안 재우고 생산성만 촉진시켜 성장시키겠다는 이야기다. 요즘 시중에서는 생산성을 강조한 나머지 깻잎조차 밤에 잠 안 재우고 키운다.

양계장의 닭과 깻잎의 가련한 운명처럼 국민을 신경과민에 시달리게 하겠다는 정책말고는,

이명박정권의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은 없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성장, 편안한 성장,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서도 보듯이 우직스럽게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누고

헌신과 희생의 가치로 살아가는 '바보'도 성공하는 시대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읽지 못한 채 좀 나눠달라고 주장을 하는 이들을

좌파 빨갱이들이라고 몰아쳤다. 김정일 추종세력과 인본주의 세력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편가르기만 열심히 한 그들이었다.

재직 시에는 그토록 국민이 욕을 했지만, 노무현정권은 적어도 고도성장의 온갖 반사이익을 챙기는 재벌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국민의 복리와 사회보장정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노무현정권은 의료보험체계에 있어서도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보다 더 진일보한 의료정책을 관철시켰다.

암을 의료보험체계에 편입시킴으로써 미국처럼 암에 걸려 집을 팔거나 파산하는 경우도 막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이 재벌과 부자와 기득권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었다.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권과 김대중정권의 10년 세월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외치게 된 배경은 무었일까.

그동안 재벌과 결탁해서 정치자금을 걷고 용돈을 잘 받아쓰고 언론과 결탁해 서로 권력을 나누고 하던

좋은 시절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의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됐다.

이명박정권과 그를 추종하는 일부 한나라당 세력이야말로 가증스러운 반국민적 정치모리배 집단임을 만천하가 알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땅에 떨어지는 현상은 바로 국민적 자각의 깊이가 얼마나 큰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서울광장을 둘러싸왔던 전경버스와 폭압적 경찰병력의 만행은 이런 국민적 자각에 지레 겁을 먹고

오금저린 저들 기만적 정치세력의 외설스러운 작태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저들 가진 자와 기득권 자를 위한 정치세력의 술수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의 서거가 주는 강렬한 메시지만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못했고, 언제나 보통국민처럼 주류에 속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고질적인 정치부패와 수구집단인 검찰권력을 개혁 하려 했으며,

언론의 부당한 권력화를 막으려 했다. 역사는 언제나 외로운 비주류의 개혁가 편과 멀다.

로마의 편중된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국가의 부흥을 이룩하려했던 가이우스 크락수스형제의 비참한 죽음과

조선왕조의 신진개혁가 조광조의 죽음이 그러하듯, 기득권은 절대로 역사의 무대에서 제발로 걸어 나가지 않고 흉계를 멈추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국민을 늘 깨어있게 하는 각성제가 되어 살아남을 것이다.

아직도 자질이나 능력이 현저히 모자라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성공시대의 수단이 되었던

건설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소위 저탄소 녹색성장정책도 면밀하게 뜯어보면 그 골격에는 땅파기와 허물고 짓는 큰 토목공사가 바탕이 되어있다.

지도자의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북한의 핵 도발도 따지고 보면 그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자존심과 등 뒤에 숨긴 날이 잘 선 쌍칼밖에 없는 사람에게

'너 등 뒤에 쌍칼 내놓으면 10년 후에 3천불 소득을 보장해 줄께'하며

'비핵개방 3천불'식의 대화법에 북한이 '그럽시다' 하고 나설 리는 천부당 만부당하다.

결국 등 뒤에 숨긴 쌍칼(핵)을 뽑고 '너 죽고 나 죽자'식의 대응을 하는

북한의 오만무도한 결기에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이명박정권의 빈곤한 상상력에 국민만 등 터질 뿐이다.

집권 후 한번도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한국사회를 종교로 찢어놓고 부자와 빈자로 찢어놓고

소위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찢어놓고, 좁디 좁은 나라에서 내편 네편이나 가르며,

치졸한 정치보복이나 해대고 심지어는 민주시민의 자연스러운 언로의 출구인 광장까지 버스로 봉쇄하며

경찰병력으로 평화로운 집회까지 막고 나선, 그가 과연 우리시대, 우리국민의 '소위 능력 있고 자격 있는' 지도자인가.

자신의 교회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걸핏하면 나라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김진홍 목사에게도 죄송스럽지만 이 점을 묻고 싶다.

열성신도는 아니지만 비판적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드리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