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있는 그들은 왜 어찌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그의 진면목을 어찌하여 사후에 알리는가 무지 몽매한 국민을 왜 좀 더 일찍 개우쳐주지 못했는가
[김창룡의 미디어창]공영방송 KBS의 몰락
진정으로 지역발전과 서민을 위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오늘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2009년 5월 29일 국민의 애도 속에 그의 소박한 웃음과 고뇌는 멀어지고 국민의 비통한 슬픔과 애통은 가눌 길이 없다. 그가 왜 그런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가를 이해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그런 깊은 고통 속에 헤맬 때 도움이 되지 못해 더욱 안타깝다.
왜 정치적 타살인가. 정치적 타살이라면 그 주연과 조연은 누구인가. 이미 모두 나온 얘기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정치적 타살’을 부정하며 오히려 ‘나라망신’운운하고 있다. 그래서 거꾸로 물어보기로 한다.
만약 당신이 전직 대통령이고 퇴임후 고향에 돌아와서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한 가지 도저히 납득할 수도 없고 전례가 없던 일이 발생했다. 검찰이 너무 친절해진 것이다. 연일 확인되지않은 피의사실을 언론에 브리핑했다. 어느 시대 어느 검찰이 수사 진행상황을 이렇게 자세하게 이렇게 자상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니까 견뎌야했다고. 너무 심하지않은가. 전직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일 뿐인데… 문제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의 브리핑 내용은 조선, 중앙, 동아 일보에 의해 대서특필됐다. 공영방송이라고 하던 KBS마저 관영방송으로 전락하여 검찰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문제제기는커녕 확대 왜곡 재생산해내는데 보조를 맞췄다. 노 전 대통령 재임때도 대통령을 인정하지않던 조중동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물어뜯었다. 지나간 신문의 지면을 한 번 찬찬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신문 제작 곳곳에 증오와 질시, 모욕주기식의 보도가 넘쳐났다.
조선 동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정파적이라고 생각했던 중앙일보도 노무현에 관한한 지면제작에 양보가 없었다. 심지어 ‘기획시론’이란 것을 만들어 학자를 동원하여 ‘노무현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칼럼을 시리즈로 내세웠다. 아직 기소도 정해지지않은 수사중의 사안에 대해 ‘실형선고후 사면하자’는 등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훼손했다.
이때처럼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한 개인과 그 가족을 초토화하는데 앞장 선 적이 없는 것 같다. 공영방송조차 중심을 잃고 철저하게 검찰권력, 언론권력의 편에 서서 전직 대통령을 할퀴었다. 봉하마을은 기자들로 포위됐다.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맞는 말이다. 그런 상황이라도 자살은 나쁘다. 살았어야 했다.
그런데 살아있어도 남은 것은 모욕과 절망, 좌절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살을 결행한 그날 또 다시 아내가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었다. 이제는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으름장이 검찰내부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자신은 구속이냐 불구속이냐를 두고 검찰내 논란이 있던 처지였다. 무력감과 좌절감, 낭패감은 그를 사지로 몰고갔다. ‘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말과 행동이 어떻게 다르게 움직이는 지를 실패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그를 사지로 몰아갔고 여기에 정치검찰이 앞장 서고 조중동과 관영방송이 어깨동무하며 조연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개인이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한 개인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간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법치사회로 부르는 것은 개인의 법익 보호를 전제로 한다. 법집행 최고 최후의 수사기관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때 법치는 망치(亡治)가 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확실한 정치검찰을 만든 장본인들로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장례식이 끝나면 조중동이 어떻게 돌변하는가를 지켜보라. 여론을 지배하는 조중동의 변화없이 한국사회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불균형을 잡고 여론의 중심을 지켜야 할 공영방송 KBS의 관영방송화는 한국언론의 죽음을 의미한다. 오죽하면 KBS노조가 스스로 ‘KBS 정권의 개가 될 건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겠는가. 이미 ‘정권의 개’가 됐다. 사고 당일 상업방송 SBS는 신속하게 특집방송을 편성했지만 공영방송 KBS는 한가하게 드라마나 방영하고 있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편성이었다. 이외에도 구체적 문제점들을 KBS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청자들의 공영방송 KBS 수신료 거부운동뿐이다.
국민의 공적 이익을 대변해주고 국민의 방송이 돼 달라는 뜻에서 공영방송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그 대상으로 KBS가 선정된 것이다. 내부에서 ‘권력의 개’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면 시청자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민간 신문사들은 독자들의 선택에 맡기면 되지만 공영방송은 국민의 수신료로 움직인다.
가장 공익을 중시하고 중립적 보도, 공정한 방송을 해야 할 KBS가 현재처럼 권력의 대변자로 전락하고 그 역할을 더욱 강화해 나갈 때 시청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이 되도록 수신료 거부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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